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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들

사랑#3 버스안에서

by damigood 2024. 10. 1.

아침 햇살이 창가를 비추기 시작할 무렵, 나는 언제나처럼 서둘러 집을 나섰다. 고등학교 3학년, 대학입시를 앞둔 그 시절의 아침은 언제나 바쁘고 긴장감 넘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날 아침은 조금 달랐다. 평소와 같은 버스, 평소와 같은 시간, 하지만 평소와는 다른 그녀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버스에 올라 자리를 찾아 앉는 순간, 나는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교복을 입은 그녀의 모습은 나와 같은 학교 학생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동안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었다. 그녀의 긴 생머리가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모습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그날 이후로 나의 아침은 완전히 달라졌다. 전에는 그저 졸음을 이기며 버스에 몸을 실었던 시간이, 이제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점차 가까워졌고, 버스에서의 짧은 대화는 점점 더 길어졌다.

그녀의 이름은 지은이었다. 지은이라는 이름은 마치 그녀를 위해 만들어진 듯했다. 맑고 깨끗한 음색의 그 이름은 그녀의 밝고 순수한 성격과 꼭 닮아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관심사와 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문학을 좋아했고, 나는 과학에 관심이 많았다. 서로 다른 관심사였지만, 그것이 오히려 우리의 대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관계는 깊어졌다. 버스에서의 만남은 학교에서의 만남으로 이어졌고, 주말에는 함께 영화를 보거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몰랐다. 입시 준비로 힘들고 지칠 때마다, 그녀의 미소와 따뜻한 말 한마디가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의 행복한 시간도 잠시, 현실은 냉정했다. 대학입시가 다가오면서 우리는 각자의 꿈을 위해 다른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이공계열로, 그녀는 인문계열로 진학을 희망했다. 같은 대학을 가기 위해 노력해보자는 말도 해봤지만, 결국 우리는 서로의 꿈을 응원하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함께 버스를 탔던 날,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그저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 날의 하늘은 유난히 맑고 푸르렀다. 마치 우리의 앞날을 축복해주는 듯했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연락이 뜸해졌다. 각자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바빴고, 거리도 멀어졌다. 가끔 문자나 전화로 안부를 물었지만, 그마저도 점점 뜸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의 관계는 추억 속으로 서서히 잠겨갔다.

그로부터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나는 이제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었다. 바쁜 일상 속에서 가끔 문득 그녀가 생각난다. 특히 봄이 오고 벚꽃이 필 때면 더욱 그렇다. 그녀와 함께 걸었던 벚꽃 길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때의 벚꽃은 유난히 아름다웠다. 아니, 어쩌면 그녀와 함께였기에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른다.

가끔 SNS를 통해 그녀의 근황을 접하곤 한다. 그녀는 여전히 아름답고 밝은 모습이다. 자신의 꿈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가슴 한편이 뭉클해진다. 동시에 그녀의 곁에 내가 없다는 사실에 작은 아쉬움도 느낀다.

그럴 때면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우리가 같은 대학을 갔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곧 그런 생각을 접는다. 우리는 각자의 길을 선택했고,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녀와의 추억은 내 청춘의 가장 아름다운 한 페이지로 남아있다.

지금도 가끔 아침 버스를 탈 때면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출근길의 복잡한 버스 속에서 문득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혹시 그녀가 저기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물론 그녀는 그곳에 없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다시 그때로 돌아간 것 같은 설렘을 느낀다.

시간이 흘러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어쩌면 언젠가 우연히 길에서 마주칠지도 모른다. 그때 우리는 어떤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볼까? 무슨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그런 상상을 하다 보면 미소가 지어진다.

그녀와의 추억은 내 인생의 보물 같은 존재다. 첫사랑의 설렘, 순수했던 그 시절의 감정, 그리고 서로를 위해 내린 결정까지. 모든 것이 내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 그녀 덕분에 나는 사랑이 무엇인지, 그리고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지금의 나는 행복하다. 좋은 직장에서 일하고 있고,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다. 하지만 가끔 그녀를 떠올리면 가슴 한구석이 아릿해진다. 그것은 후회나 미련이라기보다는 감사함에 가깝다. 내 청춘에 그토록 아름다운 추억을 선물해 준 그녀에 대한 감사함.

이제 우리는 각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지만, 언젠가 우리의 시선이 다시 마주칠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때까지 나는 그녀가 행복하기를, 그리고 가끔은 나를 떠올리며 미소 짓기를 바란다.

그녀와의 추억은 내 마음속에 봄날의 벚꽃처럼 아름답게 피어있다. 시간이 지나도 그 꽃은 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 청춘의 한 페이지를 빛나게 해주는 영원한 봄날의 추억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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